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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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내 편이 되어 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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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택목사 날짜17-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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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에 가면 이중섭미술관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이중섭 씨가 1년간 머문 곳에 미술관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옆 도로를 ‘이중섭로(路)’라고 명명했습니다. 언덕진 이중섭로를 걷다보면 거리 벽면에 전시된 시인들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양대 김용범 교수가 쓴 ‘어등포에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폐주(廢主) 광해는 18년간 제주에 머물렀고
화북포구를 떠나 그를 낳은지 2년만에
스물다섯의 나이로 요절한 어머니 곁에 묻히기를 희원(希願) 했다.

 (어디 그 심정이 광해군뿐만이랴.
누구에게나 돌아가신 어머니는 사무치게 그리운 분 아니겠는가..)

광해의 마지막 소망을 들으며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 어등포(御登浦)에 부는 바람에는 핏빛 노을에 물들어 있었다.

저는 이 시를 읽고 알았습니다. 광해가 제주에 유배되었고 그가 내린 그곳을 어등포라고 한다는 사실을. 18년은 그가 유배 생활한 총 기간이며 제주에서는 4년을 머물다 사망했습니다. 권력을 잃은 자는 평민보다 못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죽기 전 이렇게 애원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으면 어머니(공빈 김씨)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고.

왜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 달라고 했을까요? 실권(失權) 전 광해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궁궐의 사람들, 권력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광해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러나 광해가 실권하자 백성들은 등 돌렸고 충성을 맹세했던 신하들도 배신했습니다. 그렇게 광해는 교동으로 유배되고 다시 제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쓰여 있지만 그 과정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배지에 갈 때는 말을 타고 간 것이 아닙니다. 여행 가듯 간 것도 아닙니다. 중죄인의 신분으로 포승에 묶인 채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입지 못하며 서럽게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으며 갔습니다.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믿을 것 없는 비정한 인간들을 생각하며 분노와 한(恨)으로 잠 못 이루며 강화도의 작은 섬 교동에서 배를 타고 이곳 어등포까지 온 것입니다.

광해가 마지막까지 되뇐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왜일까요? 그 누구도 마지막까지 자기 곁을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어머님, 당신만은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돌아가신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그의 마음속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플 때 같이 아파했고 울 때 같이 울어주었습니다. 모두가 돌을 던질 때 어머니는 맨살로 그 돌을 맞아 주었습니다. 광해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어머니만이 자기편이라는 사실을.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그 어머니처럼 세상 모두가 내게 등을 돌릴 때 주님만이 마지막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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