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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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택목사 날짜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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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수신부를 역임하며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친 스티븐 체리(Stephen Cherry)는 저명한 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칼럼니스트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그의 책 『용서라는 고통』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1996년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한 세기에 가깝도록 반인류적 범죄가 자행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훗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진실화해위원회 의장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진실은 화해에 이르는 길!”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정력적으로 과거사 청산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해와 사면’을 분주하게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숱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분노는 내려놓되 가해자는 처벌하라!’는 목소리는 무시되었고, 용서와 금전적 보상을 맞바꾸는 분위기마저 팽배했습니다.

저자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 주로 피해자였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100만개쯤 되는 사실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중 확연히 드러나는 두 가지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용서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다시 말해 모든 용서 이야기는 헤아리지 못할 만큼 숨겨진 깊이를 가지고 있다. 둘째, 용서에는 역사적 맥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같이 살펴야 한다.” 피해자들의 주관적 상태를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상처’입니다. 그러나 그 한마디로 황무지 같은 마음을 온전히 형언할 수는 없습니다.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고통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뛰어넘어, 고통이 현실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던 고문 피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IRA 폭탄 테러로 눈앞에서 딸을 잃은 아빠, ‘묻지마 범죄’로 아들을 잃은 엄마, 성폭행 살인 사건으로 동생을 잃은 언니, 강도 살인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모두 잃은 가장의 사례 등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이런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저자는 일반적 관념을 거부하면서 용서를 강요하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용서가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궁극적 결론은 역시 ‘용서’로 모아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용서는 곧 고통입니다. 그것도 긴 시간이 걸리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합니다. 용서라는 말이 가장 불가능한 단어가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용서입니다. 어렵고 지난한 용서의 행위야말로 상처에 대한 분노, 복수, 비통, 원한을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더 나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피터 쉐퍼의 연극 <고곤의 선물>에 등장하는 주인공 헬렌의 대사를 인용합니다. “옆구리를 파고드는 이 뾰족한 창을 스스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빼내야죠. 그 속의 창자까지 같이 딸려나오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이 비유에 따르면, 용서란 바로 옆구리에 박힌 창을 뽑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용서란)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것.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기억이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논지를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의 분노는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힘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내 아픔을 내어 놓을 때 주님은 내 아픔을 만져주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때 비로소 내 인생에 파고든 뾰족한 창을 뽑아내며 고통의 삶을 청산하고 건강한 내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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